Gallery JJ On-Going Project
서용선 X GalleryJJ
생각중... In Thinking
프로젝트: 2020. 5. 20 (Wed) - 2021. 4. 24 (Sat)
전시기간: 2021. 3. 12 (Fri) - 4. 24 (Sat)
뻐꾹, 토지, 전통차.. 그리고 고구려, 신화, 이명박.. 외벽의 손 글씨가 낙서라고 보기에는 벽돌마다 한 단어씩 열 맞춰 꽤 질서정연하다. 농가와 그래피티? 그래피티라면 왜 이미지가 아닌 글씨인가? 궁금증은 실내로 이어진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가 이랬을까. 널려진 작업 도구들과 함께 듬성듬성 뜯어낸 벽지 자국 위로 이번엔 글에다 그림까지 더해져서 집은 그 자체로 신기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세계가 되어 새로운 경험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서용선 작가와 갤러리JJ가 함께 진행하는 온고잉 퍼포먼스가 서종면 가루개 마을의 비어있는 한 농가에서 펼쳐지고 있다. 말 그대로 ‘과정 지향적’인 <생각 중> 프로젝트는 올해 2020년 5월 20일부터 시작하여 이 농가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 2021년 3월 서울의 갤러리JJ 공간에서의 전시로서 약 10개월 간의 여정을 최종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창작의 과정(Art-in Progress)과 관객의 참여에 중점을 둔다. 공공미술가 수잔 레이시의 말처럼 미술가와 관객 사이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 그 자체가 미술 작업일 수 있다. 농가는 원래의 재건축 일정에 맞추어 이 프로젝트를 끝으로 철거되어 사라진다. 곧 허물게 될 빈집 점유 작업이자 공공에 열려 있는 ‘한시적인 공공미술’ 영역으로 재편될 수 있다.
프로젝트로 사용되는 빈집은 1990년대에 보편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도시 외곽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붉은 벽돌집이다. 프로젝트는 집의 외부 벽 글쓰기 작업부터 출발하였다. 서용선 작가는 5월말부터 담벼락에 매일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가는 ‘글쓰기’ 작업을 하였다. 이렇게 집의 외부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는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목격과 반응을 촉발시켰다. 사람과 집이 서로 말을 걸어오는 재미있는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집은 이제 (작가에 의하면) ‘말하는 집’이 되었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하였다. 실내 작업은 단어로 표현한 외벽의 사유들이 좀더 구체화되어 문장으로, 이미지로 나타난다. 캔버스와 판넬, 종이 등 일반적인 회화 매체는 물론 실내 벽면과 천정, 유리창, 씽크대 등 20여년간 삶의 흔적이 묻은 건축물의 모든 것이 예술 매체가 된다.
“길로 난 창이 있는 방의 도배지를 찢어냈다. 시멘트가 금이 가서 궁금했기 때문이다. 벽면의 금이 지붕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것이다. 오래된 싱크대에 붙어 있는 종이를 뜯어내니, 묘한 타일이 드러난다. 내일 더 뜯어봐야겠다.”
– 작가 노트-
<생각 중> 프로젝트는 크게 보면 두 가지 문제에 천착한다. 스튜디오를 떠나 집이라는 장소성과 현장감에 영향 받고 선택한 작가의 글쓰기 작업과 이미지 번안에 관한 문제, 그리고 일상의 사적인 공간이 작가의 끼어들기 즉 예술적 개입으로 인한 특정한 장소 또는 공적 공간으로의 변화에 주목한다.
* 텍스트와 회화
고향, 찻집, 새소리, 계약금, 등 일상적 단어들이 있는가 하면 욕망, 사랑, 공간 같은 사유의 단어들, 그리고 삼국유사, 중세, 야곱, 고려 등 역사적 단어들도 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평소의 생각,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 등을 떠올리며 그날그날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적은 기록이다. 이는 자신의 최근 기억에서부터 연상되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텍스트 작업이 ‘일종의 자화상이 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자화상과 마찬가지로 글쓰기 역시 자신을 향한 무수한 시각적 느낌과 사유의 현상들이다. 글도 시각적으로 이미지의 한 형태이며 이미지 역시 텍스트의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는 시와 글씨, 그림이 오늘날같이 독립된 장르가 아니라 서로 융합되고 통합된 서화일치사상이 있었고, 글이 그림으로 작동하는 서예예술의 역사가 있다. 서양의 가까운 과거만 해도 모더니즘의 구체시가 그림의 형상을 빌리고 초현실주의 작업은 언어의 질서를 차용하는 등 서로의 매체로 적극 침투해 들어갔다. 바르트는 회화를 텍스트로 이해했고, 현대 디지털기술은 문자와 그림과 소리의 경계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말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말이 되는 현실이다. 평소 작업에서도 숫자들이 화면에 비교적 크게 나타나던 서용선 작가의 관심사가 폭넓게 드러난다.
거실 벽에 쓰여진 글 중에 ‘기억이미지의 겹침, 간섭’, ‘비자의적 기억’ 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텍스트 쓰기는 기억의 작업이다. 기억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에는 분명 갭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발터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이미지’에서 기억 작업이 직조 행위이며 심지어 망각의 페넬로페적 작업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이 프로젝트 집에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글과 그림이 서로 엮이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미지, 글과 단어들의 수많은 연결고리와 맥락들 사이의 틈, 이 틈과 그로부터 드러나는 것들, 몰랐던 것들을 발견할 때 글쓰기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 ‘공공장소로서의 미술’(Art as Public Space)’
우연히 길에서 작업을 목격하게 되는 행인들, 동네사람들이 자주 말을 걸어오며 집 안팎을 둘러본다. “서화백 자택에 이 무슨 괴낙서란 말인가” “시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데, 왜” 지인 혹은 지나는 행인들의 반응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인 벽에 낙서를, 글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듯 말을 걸어오는가 하면, 지나가던 오케스트라 감독님은 집 앞에서의 소규모 공연 제안도 해온다. 벽 글쓰기 작업을 두고 이러한 무작위적인 사람들과의 네트웍 형성은 이 글쓰기 집이 주택이라는 개인의 사적 공간을 지나 공공의 공간으로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공공성과 조응한다. 예술적 개입으로 평범했던 주택은 일상을 담아내던 사적인 공간에서부터 현재는 자연과 순환하는 ‘말하는 집’, 말을 걸어오고 타인과의 소통을 유도하는 퍼포먼스적 공적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집이 갖고 있는 교외 지역의 장소성과 집이 가진 삶의 흔적, 건축이 갖는 조형성과 거기에 쓰인 텍스트와 이미지와의 상호작용은 익숙한 듯 낯설다. 창작 과정에 문득 참여하게 되는 관객은 물론 오픈 된 공간이 받아들이는 폭넓은 관객층과 현장에서의 노출되고 변화된 환경이 작업에 반영되면서 다양하고 우연적 경험들이 프로젝트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우리가 예술과 관계 맺는 또 하나의 소통 방식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 프로젝트는 서용선 작업의 결정체를 이룬다. 그의 작업에서 평소 보여주고 있는 1.이미지와 글 2.역사인식을 담고 있으며 3.무엇보다 그가 천착하고 있는 인간, 삶의 밀착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강주연 | 갤러리JJ 디렉터